신용회복경험담

2025.06.17 17:17

농촌 여성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1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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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평범했던 나의 일상

저는 전라남도 작은 농촌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50세 여성입니다. 남편과 함께 벼와 채소를 재배하며, 비록 소득은 크지 않았지만 자식 둘 도시로 공부 보내고, 허리 펴며 살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늘 여유롭고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농번기에는 손에 물집이 잡혀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가족들과 소박한 저녁을 나누며 평범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전개: 창업의 꿈과 그늘

그런데 몇 해 전, 도시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농촌에도 들어오면서, 저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점포를 얻고, 대출을 받아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죠. 은행 두 군데서 약 7천만 원, 카드사에서 약 4천만 원 정도를 빌렸습니다. 장사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손님은 뜸했어요. 마을에 젊은 사람도 적고, 농번기엔 다들 바쁘니 커피 마실 여유가 없었죠. 결국 월세, 인건비, 원두 비용까지 감당 못 해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 사이 빚은 1억 1천만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위기: 무너진 자존감과 결심

가게 문을 닫고 나서 몇 달은 정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남편도 마음고생이 컸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차마 말도 못 했죠.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흐르고, 카드사에서 독촉장이 오기 시작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동네 지인의 소개로 처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3개월 정도 고민한 끝에 상담을 받으러 나갔습니다. 처음 상담받을 때는 고개도 못 들고, 눈물이 먼저 났어요. "이 나이에 내가 이런 데를 오다니…"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는 따뜻하게 제 상황을 들어주었고, 그때 처음으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해결: 다시 서기 위한 과정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준비할 서류도 많고, 농사일과 병행하느라 고생도 했지만, 하나하나 정리하며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최종 인가가 나면서 저는 1억 1천만 원의 채무 중 약 70%가 탕감되고, 남은 금액은 월 25만 원씩 3년간 갚는 변제계획이 확정됐습니다. 법원에 출석하던 날, 긴장도 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판사님이 제 진심을 믿어주시는 것 같아 참 고마웠습니다. 중간중간 변제금을 마련하느라 농사 외에도 부업으로 김장철에 김치 만들어 팔기도 했고, 들깨 수확 때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말: 달라진 삶과 희망

개인회생 인가를 받은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현재까지 변제금을 한 번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 중이고요.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빚 독촉 전화가 없다는 게 얼마나 큰 평온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요즘은 텃밭 옆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지어 약초를 재배하는 일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 큰 수익은 없지만, 제 손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요.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부끄러워 숨기고만 있으면, 고통은 길어질 뿐입니다. 저처럼 용기 내서 상담부터 받아보세요. 개인회생은 단순한 빚 갚기 제도가 아니라,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도 그렇게 다시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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