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믿었던 주식, 인생의 덫이 되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30 16:13
-
18
0
1. 도입부: 안정적이었던 내 삶
저는 지방 시청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성실히 일하며 두 자녀를 키우는 가장으로서, 남들처럼 대단한 부는 아니지만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둘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교육비와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내와 함께 검소하게 살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주식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나도 뭔가 더 해봐야 하지 않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아이들 대학 등록금, 노후 준비까지는 어렵다는 현실이 점점 불안하게 다가왔습니다.
2. 전개: 주식의 유혹, 그리고 추락
처음엔 소액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수익이 났고, 금세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욕심이 커지면서 레버리지 상품에도 손을 댔고, 신용거래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투자금은 순식간에 수천만 원대로 늘었고, ‘이번엔 확실하다’며 무리하게 베팅한 순간, 주식시장이 급락했습니다.
단기 반등을 기대했지만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증권사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돌리고, 저축은행에서 대출까지 받게 됐죠. 채무는 어느새 9천만 원에 달했고, 이자만 해도 매달 150만 원이 넘었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내에게 말을 못 하니 죄책감에 숨이 막혔습니다.
3. 위기: 무너진 자존심과 결단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의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내가 조용히 말하더군요. “당신, 무슨 일 있어요?” 그 순간,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제야 모든 걸 털어놓았고, 아내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우리, 방법을 찾아봐요.”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된 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엔 ‘공무원이 그런 것까지 받아야 하나’ 하는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지만, 더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3개월간 망설였지만, 결국 상담을 받았습니다. 문을 열며 제 이름을 말할 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4. 해결: 다시 시작하는 절차
상담 후 서류를 준비하고, 실제 인가 결정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법원에 출석해 심문을 받을 땐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정직한 태도’가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5년간 월 35만 원씩, 총 2,100만 원을 갚는 변제계획안이 인가되었습니다. 나머지 채무는 면책 대상이 되었죠.
변제 초기엔 빠듯했습니다. 용돈은 거의 없었고, 휴대폰 요금도 기본 요금제로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지지해 준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출근길에 작은 도시락을 싸주는 아내 덕에 마음이 든든했고, 아이들도 외식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5. 결말: 삶은 다시 굴러간다
지금은 개인회생 3년 차입니다. 한 번도 연체 없이 잘 납부하고 있고, 남은 기간도 계획대로 갚아갈 생각입니다. 채권자의 압박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무엇보다, 다시 저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무리한 재테크 대신 작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저축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퇴직 후에도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법의 도움을 받으세요. 회생은 ‘패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입니다.